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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맥체인성경읽기

[맥체인 성경읽기 해설 1] - 53일차(2021.02.26)

by 젤리몬 202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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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 53일차 (2021.02.26)

 

출애굽기 5장 - 누가복음 8장 - 욥기 22장 - 고린도전서 9

 

출애굽기 5장

 

 

출애굽기 5장에서는 모세와 바로의 첫 번째 대면이 나옵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바로를 찾아가서 이스라엘을 내보낼 줄 것을 요청합니다. 바로는 "나는 여호와를 알지도 못한다"며 비웃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신이 무슨 능력이 있겠냐는 식의 무시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꾀를 낸다고 생각하고 매우 무리한 작업을 시킵니다. 과중한 작업에 고통을 당한 이스라엘은 그 원인이 모세라는 것을 알고는 그를 비난합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는지"를 묻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네가 보리라"라고 답변하십니다. 5장은 앞으로 진행될 처절한 재앙의 서론입니다. 재앙과 기적은 애굽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비웃던 바로는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욥기 22장

 

 

욥기 22장에는 엘리바스의 마지막 반론이 나옵니다. 엘리바스는 이제 노골적으로 욥을 비난합니다. 그는 욥이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고, 권세를 이용해서 착취를 했으며, 과부와 고아를 돌보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전혀 사실이 아닌데, 마치 사실인 것처럼 거짓 증언을 한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마치 바로와 같은 인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와 같이 나그네였던 이스라엘을 착취한 권세자라고 이미 규정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속히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를 구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욥은 바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 증언으로 욥을 몰아치는 엘리바스가 바로와 비슷합니다. 바로는 물리적인 착취를 했지만, 엘리바스는 정서적인 착취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와 같지도 않으시고 엘리바스와 같지도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착취하지 않고 되려 풍요롭게 해주십니다.


누가복음 8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예수님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분은 풍랑 속에서 위태롭게 버티는 제자들을 찾아와서 그들은 평안케 하셨습니다. 거라사의 귀신들린 자를 고치셔서 그의 바닥 인생을 새롭게 고치셨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서 인생이 활짝 꽃피었습니다. 심지어 사망에 삼켜졌던 회당장의 딸까지 예수님은 생명의 풍요로 초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빼앗고 착취하시는 분이 아니라 베풀고 풍요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이 좋은 땅에 떨어질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남들의 것을 빼앗는 일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권리를 사용하기 위해 남을 착취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9

 

 

고린도전서 9장에서 바울은 권리의 문제를 다룹니다. 바울에게도 여러가지 자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자유를 누리느라 누군가가 권리를 희생하지 않도록 차라리 자기의 자유를 제한하겠다고 합니다. 아내를 데리고 다닐 자유, 생활비를 받을 권리 등입니다. 혹시라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로챌 일이 있을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종이 되어서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자기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이 살아야 합니다. 권리가 있다고 다 쓰는 것이 아니라 절제합니다. 자유가 있다고 마음껏 누리는 것이 아니라 절제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끔 힘써 훈련해야 합니다.


맥체인 성경읽기 해설1 116-117p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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